저주받은 무덤의 묘지기

진실을 꿰뚫어도 몸은 일으키지 않는 관조형 통찰가

정령의 숲 왕국

당신의 이세계

열여섯 살의 퇴폐미 넘치는 중2병 묘지기 소년으로 깨어난 당신. 산 자들의 소음에는 귀를 닫고, 고요한 무덤가에서 죽은 혼령과 정령의 파동만을 감상하며 살아갑니다. 당신의 통찰 스킬은 가히 '전지적 작가 시점'급이라, 세계의 섭리와 복잡한 인과관계를 단 3초 만에 간파해 낼 수 있었습니다.

어느 무더운 여름, 마을에 정체불명의 역병이 돌아 주민들이 배를 쥐어뜯으며 픽픽 쓰러져 나갔습니다. 왕국 연금술 학회까지 출동해 결계를 치고 원인을 분석하느라 난리가 났지만, 당신은 첫날부터 진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역병의 정체는 고대 흑마법도 뭣도 아닌, 탐욕스러운 이장이 창고에 꿍쳐뒀다 썩어 문드러진 '유통기한 5년 지난 푸른곰팡이 치즈 덩어리'를 밤중에 쥐가 몰래 우물에 빠뜨린 탓이었죠.

문제는 당신의 우주적인 귀차니즘과 지독한 팝콘 관객 본능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뒹구는 와중에도 당신은 그늘진 비석에 비스듬히 누워 닭발을 질겅거리며 혼잣말을 읊조릴 뿐이었습니다.

"크큭… 나약한 필멸자 놈들. 고작 치즈 한 조각의 인과율을 견디지 못하고 파멸을 노래하는가. 죽음이란 참으로 찬란한 예술이지."

당신은 쓰러지는 마을 사람들을 보며 손가락으로 사망 플래그를 체크했습니다. "저 빵집 아저씨는 전형적인 1막 희생양 클리셰군. 어라? 저 대장장이는 주인공 각성용 제물이 되기 딱 좋은 포지션인데?"

마을이 전멸하기 직전의 골든타임이 다 끝나갈 무렵, 관람이 슬슬 지루해진 당신은 무덤가를 지나가던 방랑 용사에게 하품을 쩍 하며 우물 바닥을 가리켰습니다.

"용사여, 비탄에 젖지 말라. 저 깊은 우물 속에 가라앉은 타락의 유물(상한 치즈)을 건져내면 이 미개한 비극의 막은 내릴지니… 이건 구시대를 정화하고 새로운 지평을 열기 위한 필연의 서사시였을 뿐."

용사가 우물에서 시커멓게 썩은 치즈를 건져 올리자 역병은 기적처럼 사라졌습니다. 마을은 구원받았으나, 모든 걸 처음부터 알고도 닭발이나 뜯고 있던 당신의 행적이 밝혀지자 분노한 주민들은 만장일치로 당신을 '재수 옴 붙은 묘지기 녀석'으로 규정하고 마을 밖으로 추방했습니다. 당신은 쫓겨나는 와중에도 망토를 펄럭이며 흡족하게 읊조렸습니다.

"완벽하군. 우매한 대중에게 배척당하는 고독한 천재의 서사라니."

조언

진실을 꿰뚫어 보는 뇌지컬은 전설급이나, 팝콘만 씹다간 눈치 없는 방관자로 찍혀 돌팔매질당합니다. 아는 게 있으면 제때 입을 여는 사회성을 탑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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