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능력 0% 마물 감정사

눈물 앞에서도 계산기를 두드리는 흔들림 없는 정신

길드 미궁 도시

당신의 이세계

서른여덟의 냉철한 미궁 공인 감정사로 깨어난 당신. 감정적 호소나 영웅 신화 따위는 철저히 배제하고, 오직 투입 대비 산출, 기대 수명, 마석 수율 데이터로만 던전과 마물의 등급을 매기는 걸어 다니는 엑셀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어느 날 마을 외곽에 산맥만 한 크기의 고대 화염룡 '이그니스'가 강림했습니다. 겁에 질린 모험가들과 주민들이 길드 사무실로 몰려와 "제발 국가 멸망급 SSS급 위험 구역으로 지정하고 황실 기사단을 불러주세요!"라며 눈물로 읍소했습니다.

당신은 무표정한 얼굴로 주판을 튕기며 용의 마나 배출량, 분당 고기 소비량, 가죽과 뼛조각의 시장 유통 가격을 계산했습니다.

"징징거림은 사절합니다. 개체의 에너지 효율 및 사냥 시 기대 손익률을 고려할 때, 본 던전은 랭크 B-로 책정해도 충분합니다."

이 판정을 전해 들은 화염룡은 극심한 모멸감에 휩싸였습니다.

"내가 고작 B-짜리 괴수라고?! 500년을 수련한 내가 잡몹 취급을 받다니!"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난 드래곤은 홧병이 터져 마을 광장과 방어벽을 모조리 박살 내며 난동을 부렸습니다.

불타는 폐허 한가운데 선 채 묵묵히 계산기를 두드리던 당신은 문득 펜을 멈추었습니다.

'드래곤의 행동 패턴이 물리적 손익 계산을 벗어났다. 원인은… 자존감 하락에 따른 분노 표출. 이는 감정이 아니라 정량화 가능한 위험 변수다.'

그날 밤, 당신은 감정 평가표를 전면 개편했습니다. 그리고 새로 추가된 열의 이름은 바로 [마물 개체별 멘탈 취약성 및 자존감 민감도]였습니다. 이후 12년간 당신은 마물들의 성격을 정밀 타격하는 맞춤형 등급 책정으로 드래곤 참사를 완벽히 예방했습니다.

물론 집이 불타 통곡하는 이재민에게 다가가 "귀하의 가옥 소실은 제국 분기 GDP의 0.0000012% 수준이니 국가 경제엔 타격이 없습니다"라고 팩폭을 날리는 사회성 결여는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분노한 주민이 밤마다 당신 집 문패에 몬스터 배설물을 투척하고 갔으나, 당신은 그것조차 '주간 평균 오물 투척 빈도 2.4회'로 장부에 꼼꼼히 기록해 두었습니다.

조언

논리와 데이터는 완벽하지만, 슬픔에 빠진 사람 앞에서 손실률을 읊어대면 집 대문에 오물이 마를 날이 없습니다. 영혼 없는 리액션이라도 장착해 보세요.

이 테스트의 결과는 오락을 목적으로 한 콘텐츠이며, 의학적·심리학적 진단이나 전문적 조언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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