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문자 해독가
검증 따위 하지 않는 감각형 괴짜
안개에 잠긴 유적 대륙

당신의 이세계
스무 살의 허약한 체질을 지닌 백수 청년으로 환생한 당신. 근력 3, 마력 2의 보잘것없는 스펙이었지만, 당신에겐 다른 모든 단점을 씹어먹는 궁극의 히든 치트 스킬이 있었으니…… 바로 '신들린 느낌적인 느낌'이었습니다.
지루한 흙수저 생활을 청산하려던 찰나 시골 마을에 S랭크 용사 파티가 찾아왔고, 당신은 짐꾼이라도 시켜달라며 그들을 따라 고대 저주 유적의 봉인문 앞에 섰습니다. 수백 년간 제국 고고학자 수백 명이 머리를 싸매도 풀지 못했던 살벌한 저주의 쐐기 문자를 본 당신은, 문법 분석 따위 건너뛰고 3초 만에 턱을 긁적였습니다.
"음… 문법은 1도 모르겠지만, 왠지 오른쪽 해골 코를 누르면 즉사 트랩이 터질 것 같은 강렬한 삘이 오는데?"
당신이 직감대로 왼쪽 횃불을 돌리자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봉인문이 부드럽게 열렸습니다. 기적 같은 해독 능력에 경악한 용사 파티는 그 자리에서 당신을 '초고대 지혜의 현자'로 모시며 VIP 동료로 영입했습니다.
파티의 에이스로 등극한 당신은 기세등등하게 다음 방으로 들어섰습니다. 그곳 중앙에는 시뻘건 마력 회로가 복잡하게 얽힌 고대 기계 장치가 있었죠. 당신의 손이 스위치로 거침없이 뻗어 나갔습니다.
"오호, 이 푸르스름한 보석 버튼… 누르면 시원한 바나나 우유가 콸콸 나올 것 같은 영롱한 느낌이야!"
기겁한 탐사대장이 사색이 되어 당신의 팔을 잡고 애원했습니다.
"잠깐! 여긴 한 번도 기록된 적 없는 미지의 심연이오! 제발 마력 측정기라도 대보고 누릅시다!"
하지만 당신에게 '교차 검증'과 '확인'이란 자신의 천재적인 육감에 대한 모욕이었습니다. 당신은 콧방귀를 뀌며 손가락을 내리꽂았습니다.
"비켜봐. 내 감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틀린 적이 없거든!"
콰콰콰쾅-!
안타깝게도 그 스위치는 바나나 우유 디스펜서가 아니라, 잠자던 지하 마그마를 유적 전체로 분출시키는 '지하 화산 기폭 스위치'였습니다. 용사 파티는 거품을 물고 비명을 지르며 용암 파도를 피해 필사의 탈출 레이스를 펼쳐야 했습니다.
바지가 다 타들어 가는 와중에도 전력 질주하던 당신은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이상하네… 색깔은 진짜 바나나 우유였는데 왜 용암이 나오지…?"
조언
번뜩이는 육감과 직관은 슈퍼 파워지만, 남의 목숨이 걸린 스위치를 누를 때조차 '삘' 하나만 믿는 건 재앙입니다. 최소한의 안전 검증이라는 절차를 거칩시다.